朝鮮の知識人尹致昊の日記を韓国人ブロガーの『百年歴史』さんに送っていただいた(日本語にも訳してくださった!)ので、転載します。
これは、まだ大韓民国が生まれる前、共産主義者と自由主義経済の考えを持つ者が対立(※後者は日本統治時代の資産家が多かった)し、前者を中心として「親日派」(※つまり、後者も含まれる)を処断せよという風潮の中で、尹致昊が書いたもの。彼はこの内容を李承晩と米軍政庁に送ったとされているが、事実確認はされていない模様です。
特に10月20日の日記の最後の段落は、未来も予測していたように感じます。
彼はこれを書いた2ヶ月後に脳溢血で亡くなり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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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の原文は英語で、それを韓国語に翻訳した本からの引用。日本語訳は百年歴史さんの翻訳ママ。
ある老人の瞑想録 1① — 1945年10月15日
聞くところによると、朝鮮人が民主政府の運営について取り沙汰しているとのことですが、私にはまるで6歳の子供が自動車の運転や飛行機の操縦について論じているかのように聞こえます。イギリスとアメリカだけが、この世界で民主主義に成功した国です。立派な市民としての道徳心を備えているドイツ人や、論理的で知的なフランス人でさえ、イギリス人が定立した民主主義の標準型に到達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南アメリカにある数多くの共和国の中に、真の民主主義国家だと指し示せる国があるでしょうか。「今」の朝鮮は、中国や満州よりも民主主義の準備ができていません。
朝鮮人の中には共産主義を望む人々がいます。非常に哀惜の念に堪えません。高度な政治力と実用的な知恵を持つイギリスが徐々に社会主義政策を導入していくのならいざ知らず、社会主義のA, B, C, Dも知らない朝鮮が、どうしてあえて共産主義国家の経営を望めるでしょうか。それはさておき、この二ヶ月間、北緯38度線以北では、朝鮮人の共産主義者たちが後見人の助けを借りて、共産主義が朝鮮で勝利を収めた場合に受けるであろう「苦い味」について、我々が予見していた通りの見本を見せてくれました。略奪と強奪、そして虐殺を事とする共産主義が標榜する「優しく慈悲深い態度」と、抑圧し弾圧し虐待する日本帝国主義の間で、すなわち悪魔と深淵(深淵)の間で、どのような選択の余地があるというのでしょうか。
それゆえ、現在と来たるべき未来のために朝鮮に必要なものは、慈愛に満ちた温情主義です。強い手と利他的な献身によって立ち上がる有力者が必要です。民主主義の形式とスローガンだけを掲げて国民を煽動する群れや、共産主義の残虐で不合理な理念から、教育も受けられず訓練もされていない朝鮮人を守ってくれる有力者のことです。我々朝鮮人は、典型的な民主主義や急進的な共産主義を受け入れる政治的な準備ができていません。私たちは放縦を自由と、強奪を共産主義と誤解するという深刻な危機に直面しています。
朝鮮に樹立される新政府がいかなる形態を採ろうとも、朝鮮人は固有の伝統と慣習を守らねばならず、必要であれば、いつでもどこでも一段階ずつ新しい慣習を導入すべきです。
① 解放直後、尹致昊は「ある老人の瞑想録」という英文書簡を作成し、米軍政と李承晩に送った。彼は1945年10月15日に作成した書簡において、韓国人はまだ民主主義を運営していく能力がないという点と、韓国が共産主義化されてはならないという点を強調し、韓国人を指導する有力者が必要だと力説した。ここで言う有力者が、具体的に李承晩を指しているのかは定かではない。彼はまた1945年10月20日に作成した書簡において、日政時代において韓国人は好むと好まざるとにかかわらず「日本人」であらざるを得なかったと主張し、親日派に対する赦免を訴えた。「ある老人の瞑想録」は、尹致昊が解放を迎えた後も、日政時代に抱いていた見解をそのまま固守していたという事実を確認できる貴重な資料である。尹致昊の従孫娘である翻訳文学者の尹慶南(ユン・ギョンナム)先生の翻訳文(尹慶南訳、『(国訳) 佐翁 尹致昊 書簡集』、湖山文化、1995)を主に参考にした。
ある老人の瞑想録 2 — 1945年10月20日
親日派という 非難を受けて追放された人の中には、有能で有用な人々が少なくありません。さて、果たして誰が独善的な誹謗者なのでしょうか。まさに、そうした連中の大部分が1945年8月15日の正午まで、学校、教会、工場、政府、大企業、百貨店、結婚式、葬儀など、あらゆる公の席で宮城遥拝を行い、皇国臣民ノ誓詞を唱え、天皇陛下万歳を叫んでいました。彼らの大部分が創氏改名をしていました。なぜ彼らは親日派と同じ行動をとったのでしょうか。彼らはただ、そうせざるを得なかったのです。さもなければ監獄に行かねばならなかったからです。ならば、誰が他人に真っ先に石を投げられるというのでしょうか。それには二つの理由があります。(1) 自らの不名誉な過去を隠すために朝鮮人を欺くためです。(2) 政党や個人の懐を満たすために、不安と恐怖に包まれている人々から金を巻き上げるためです。
誰かに親일파(親日派)という汚名を着せることは、実にお話にならないほど理不尽なことです。日本に併合されていた(1911年¹から1945年まで)34年間、朝鮮の地位はどうだったでしょうか。独立した王国でしたか。いいえ。朝鮮は日本の一部であり、アメリカなどの世界列強もそのように認識していました。すなわち、朝鮮人は好むと好まざるとにかかわらず日本人でした。ならば、日本の臣民として「朝鮮で生きるしかなかった」我々にとって、日本政権の命令や要求に応じること以外に、どのような代案があったでしょうか。我々の息子を戦場へ送り、娘を工場へ送らねばならなかったのに、どうやって軍国主義者たちの命令や要求を拒むことができたでしょうか。したがって、誰かが日本の臣民として行ったことをもって非難するのは、言語道断です。
いわゆる親日派が平和に暮らせるように、また「自由は即ち無法であり、共産主義は即ち強奪である」と信じている(そしてそのように行動する)「愛国者」の恐喝や脅迫から安全でいられるように、高度な政治行為かつ普遍的正義として、一般赦免(大赦)が断行されるべきです。追放された朝鮮人の中の多数は、多方面にわたって従前の「十長(現場監督)²」たちから効率性と規律を学んできました。各地域の状況や朝鮮人大衆の要求に対する彼らの知識と才能は、朝鮮の新政府指導者たちにとって大いに有用なはずです。
ところが、あたかも自分たちの力と勇猛さによって日本軍国主義から朝鮮を救い出しでもしたかのように、どこへ行っても威張り散らしている自称「救世主」たちの姿というのは、実に滑稽なものです。彼らは愚鈍であるか、恥を知らないか——おそらくはその両方でしょうが——、朝鮮の自由が「月の中に住んでいる人の自由」ほども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知らないようです。
いわゆるその「解放」とは、単に連合軍の勝利の一部分として我々にもたらされたものに過ぎません。もし日本が降伏していなかったなら、虚勢と自慢に満ちた「愛国者」たちは、誰かが大きな杖で日本を追い出すまで、宮城遥拝を続け、皇国臣民ノ誓詞を唱え続けていたでしょう。明らかなことは、この虚勢と自慢に満ちた「愛国者」たちが日本を追い出したのではないという点です。もし何らかの異変によって日本が再び朝鮮を奪還したならば、この虚勢と自慢に満ちた「愛国者」が日本を追い出す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この法螺吹きたちは、寓話に出てくる愚かなハエのように、言い換えれば、走る馬車の上に止まっていながら「この馬車は自分の力で転がっているのだ」と叫ぶハエのように言いふらしているだけなのです。
我々は解放が「贈り物」として与えられたものであることを率直に認め、その幸運をありがたく思うべきです。失った宝石を取り戻したかのような恩恵を授かったからには、謙虚な心で二度とそれを失わないよう最善を尽くさねばなりません。些細な個人的野心や党派的な陰謀、地域間の憎悪などはすべて葬り去り、苦痛を味わっている我が国の公益のために、皆で協力すべきです。我が国の地政学的な状況から察するに、民衆の無知と党派間の不和の中では、我々朝鮮の未来を楽観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我々は分裂せず、団結せねばなりません。
¹ 1910年を勘違いしたようである。
² 各界各層の日本人エリートたちを意味するものと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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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下は韓国語原文
한 노인의 명상록 1① — 1945년 10월 15일
듣자하니 조선인이 민주 정부 운영에 관해 거론한다는데, 내게는 마치 여섯 살 난 어린아이가 자동차 운전이나 비행기 조종에 관해 거론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영국과 미국만이 이 세상에서 민주주의로 성공한 나라입니다.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도덕심을 갖추고 있는 독일인이나 논리적이고 지적인 프랑스인조차도 영국인이 정립한 민주주의의 표준형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남아메리카에 있는 수많은 공화국 중에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지목할 수 있는 나라가 있습니까? '지금' 조선은 중국이나 만주보다도 민주주의가 덜 준비되어 있습니다.
조선인 가운데는 공산주의를 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도의 정치력과 실용적인 지혜를 가진 영국이 서서히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해간다면 모를까, 사회주의의 A, B, C, D도 모르는 조선이 어찌 감히 공산주의 국가의 경영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지난 두 달 동안 북위 38도선 이북에서는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후견인의 도움에 힘입어서, 공산주의가 조선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에는 따끔한 맛을 보게 될 거라고 우리가 예견했던 바 그대로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약탈과 강탈과 학살을 일삼는 공산주의가 표방하는 부드럽고 자비로운 태도와 억압하고 탄압하고 학대하는 일본 제국주의 사이에서, 즉 악마와 심연(深淵) 사이에서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요?
그러므로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위해 조선에 필요한 것은 자애로운 온정주의입니다. 굳센 손과 이타적인 헌신으로 일어설 유력자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형식과 구호만을 내세우며 국민을 선동하는 무리와 공산주의의 잔학하고 불합리한 이념으로부터, 교육도 받지 못했고 훈련도 안 되어 있는 조선인을 지켜줄 유력자 말입니다. 우리 조선인은 전형적인 민주주의나 급진적인 공산주의를 받아들일 정치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방종을 자유로, 강탈을 공산주의로 오해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조선에 수립될 새 정부가 어떤 형태를 띠든 간에 조선인은 고유의 전통과 관습을 지켜야 하며,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한 단계씩 새로운 관습을 도입해야 합니다.
① 해방 직후 윤치호는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영문 서한을 작성해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보냈다. 그는 1945년 10월 15일에 작성한 서한에서 한국인은 아직 민주주의를 운영해 나갈 능력이 없다는 점과 한국이 공산주의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한국인을 지도할 유력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여기서 말하는 유력자가 구체적으로 이승만을 가리키는 것이지는 확실치 않다. 그는 또 1945년 10월 20일에 작성한 서한에서 일제 치하에서 한국인은 좋든 싫든 '일본인'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친일파에 대한 사면을 호소했다. 「한 노인의 명상록」은 윤치호가 해방을 맞이한 후에도 일제 시기에 갖고 있던 견해를 그대로 고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윤치호의 종손녀인 번역문학가 윤경남 선생님의 번역문(윤경남 옮김, 『(국역) 좌옹 윤치호 서한집』, 호산문화, 1995)을 대부분 참고했다.
한 노인의 명상록 2 — 1945년 10월 20일
1.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고 추방당한 사람 중에는 유능하고 유용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 과연 누가 독선적인 비방자일까요? 바로 그런 친구의 대부분이 1945년 8월 15일 정오까지안 해도 학교, 교회, 공장, 정부, 큰 사업체, 백화점, 결혼식, 장례식 등 모든 공식석상에서 궁성요배를 하고, 황국신민서사를 되뇌고, 천황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창씨개명을 했습니다. 어째서 그들은 친일파와 똑같은 행동을 했을까요? 그들은 다만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아니면 감옥에 가야만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누가 남들에게 제일 먼저 돌을 던지는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불미스러운 자기들의 과거를 감추고자 조선인을 속이기 위해서입니다. (2) 정당과 개인의 주머니를 채우고자 근심과 공포감에 싸여 있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에게 친일파라고 오명을 씌우는 것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일본에 병합됐던(1911년¹부터 1945년까지) 34년 동안 조선의 위상은 어땠습니까? 독립적인 왕국이었나요? 아니요. 조선은 일본의 일부였고, 미국 등 세계열강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즉 조선인은 좋든 싫든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신민으로서 '조선에서 살아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일본 정권의 명령과 요구에 응하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딸을 공장에 보내야만 했는데, 무슨 수로 군국주의자들의 명령과 요구를 거역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군가가 일본의 신민으로서 한 일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른바 친일파가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또 자유는 곧 무법이며 공산주의는 곧 강탈이라고 믿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애국자'의 공갈 협박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고도의 정치 행위이자 보편적 정의로서 일반 사면이 단행되어야 합니다. 추방된 조선인 가운데 다수는 다방면에 걸쳐서 종전의 십장들²로부터 효율성과 규율을 배워왔습니다. 각 지역의 상황과 조선인 대중의 요구에 대한 그들의 지식과 재능은 조선의 새 정부 지도자들에게 크게 유용할 것입니다.
2. 그런데 마치 자기들의 힘과 용맹성을 가지고 일본 군국주의로부터 조선을 구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어딜 가나 으스대며 다니는, 자칭 구세주의 꼴이란 참으로 가관입니다. 그들은 아둔하거나 수치심이 없는 — 아마도 그 둘 다인 — 사람들인지라, 조선의 자유는 달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의 자유만큼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이른바 그 '해방'이란, 단지 연합군 승리의 한 부분으로 우리에게 온 것뿐입니다. 만일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더라면, 허세와 자만에 찬 '애국자'들은 어떤 사람이 큰 지팡이로 일본을 내쫓을 때까지 계속해서 궁성요배를 하고 황국신민서사를 읊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허세와 자만에 찬 '애국자'들이 일본을 몰아낸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일 어떤 이변에 의해서 일본이 다시 조선을 탈환한다면, 이 허세와 자만에 찬 '애국자'가 일본을 몰아낼 수 있을까요? 이 허풍쟁이들은 우화에 나오는 어리석은 파리처럼, 다시 말해서 달리는 마차 위에 내려앉아 있으면서 '이 마차는 내 힘으로 굴러가고 있다'라고 외치는 파리처럼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해방이 선물로 주어진 것임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 행운을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잃었던 보석을 되찾은 듯한 은혜를 입은 만큼,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는 그것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소한 개인적 야심과 당파적인 음모와 지역 간의 증오심이랑 모두 묻어두고,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익을 위해 다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민중의 무지와 당파 간의 불화 속에서는 우리 조선의 미래를 낙관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분열되지 말고 단결해야 합니다.
¹ 1910년을 착각한 모양이다.
² 각계각층의 일본인 엘리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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