いつも素晴らしい動画を作成して下さる『百年歴史』さんが、日本統治時代の朝鮮の写真を集めた動画をupされました。
- 근대 조선의 흔한 사진들 모음(1 of 3) - Japanese Subtitle
- 근대 조선의 흔한 사진들 모음(2 of 3)
- 근대 조선의 흔한 사진들 모음(3 of 3)
の3本です。
1のみは日本語字幕も作られているので、字幕を表示させてご覧下さい。
3本目の動画に立派な野球場が出てきますが、映画『KANO』に出てくる甲子園球場もこんな感じでした。このスタジアムは、ソウルオリンピックで新たなスタジアムが作られる前は日本の国立競技場のようなメインスタジアムだったそうです。この動画はスポーツシーンが多く出てきます。
うろ覚えですが、百年歴史さんは確かブログにこのような事書かれていたと思います。
「誰かを説得しようとこのブログを書いている訳では無い。私と同じ考えの人に『あなたは一人では無い』と伝える為だ。」
韓国の保守でもなかなか日本統治時代の実情には目を向けないので、再生回数はあまり伸びないのですが、その分、彼の動画を観てコメントを残す様な方は一般的な韓国人とは異なります。
今回、3の動画にある方(@chulsookim6332)が、祖父母や曾祖父母から聞いた(伝えられた)日本統治時代の思い出を書いてらしたので、かなり長いのですがご紹介したいと思います。
* * * *
亡くなった母方の祖父が1922年生まれですが、幼い頃に聞いた日帝時代の話を未だに忘れられずにいます。
日帝時代当時、日本で朝鮮青年たちを徴用と労働に強制的に動員したのではなく、殺人、強姦、性的暴行、強盗、傷害など凶悪犯および殺人犯のような死刑囚だけを選んで連れて行った〔※〕が実際の事実だと聞きました。
※これは誤解と思われる。逮捕しただけだろう。以下は、ブログ主のコメント。
<Papago Translation J→K>이 부분은 오해라고 생각됩니다.1939년부터 1944년 9월까지는 한반도에서는 징용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본 기업이 직접 또는 관공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노동자를 모집했습니다.2018년 대법원 판결의 원고 4명은 모두 자신의 의사로 응모했고, 그 중 한 명인 여운택 씨는 지인인 일본인 교장 명함에 추천문을 써 합격했습니다.범죄자 같은 건 고용할 필요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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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部分は誤解だと思われます。1939年から1944年9月迄は、朝鮮半島では『徴用』は行われず、日本企業が直接、または役所を通じて間接的に労働者を募集しました。2018年の大法院判決の原告4名は全て自分の意思で応募し、その内の一人、呂運沢氏は、知人の日本人校長の名刺に推薦文を書いて貰って合格しました。犯罪者など雇う必要はありませんでした。
もちろん死刑囚たちの人権も重要ではありますが、その時代と現代の人権意識を比べると大きな違いがあるそうです。 映画「シルミド」をご覧になった方はご存知だと思いますが、これは日本だけでなく18~19世紀の西洋ヨーロッパでも殺人犯、凶悪犯のような死刑執行を免れる条件で兵力確保目的で戦場に徴用したのは世界的な歴史です。
日本から医療奉仕に来ていた日本人医師の影響で現代式医療技術が導入され、朝鮮人の病気が多く治療され、平均寿命が延び生活の質が高まったのもこの時からだといいます。
朝鮮人の生体実験についても実際には死刑囚だけを選んで連れて行き、一部の朝鮮人地主や両班は自分たちの奴婢や使用人を殺害した後、お金をもらって日本人葬儀屋に医療実習用の遺体を売り渡して寄贈したということです。
路上に排泄物を片付けながら道路工事、排水路作業、上下水道の普及で各家庭に水道とトイレを普及させ、地域別に衛生局を設立して貧民救済や歯磨き粉、歯ブラシ、石鹸などを無償提供し、朝鮮人の衛生を改善させたのも医療奉仕に来た日本人医師や社会福祉士および篤志家たちでした。 これが実際の現実です。
そして1894年の甲午改革以降も1945年以前まで民衆内では儒教的身分制度が依然として残っており、文を知らなかった奴婢や天民の子孫は両班たちの知恵に乗っかって表向きは作男という正式に雇用された労働者と記録し、実際には朝鮮奴婢たちと違わなかったそうです。 特に地方と田舎はもっとひどかったと聞きました。
これを打破し、身分制の完全廃止と民主主義のために朝鮮両班と王室支配層を統制したのが日本です。
そして文を知らなかった奴婢と天民出身に文を教えたのが日本政府です。 もちろん韓国語ではなく日本語を教えはしましたが、社会下位階層に故意に文を教えず奴婢としてこき使っていた腐敗した朝鮮王室や両班など朝鮮社会支配層よりは、たとえ日本語とひらがなを教えて文盲撤廃のために努力した日本政府が悪くないか、あるいはむしろましだ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
そして性理学的身分秩序を固める目的で民衆が文を読み書きするのを防ぐために朝鮮末期と大韓帝国時代にすべての文書と新聞、書籍などに漢文を使い世宗大王が作った民族固有言語であるハングルをなくすために発悪したのが朝鮮王室と両班たちでした。
創氏改名は、その真実と内面を覗いてみると歪曲です。 また戸籍と名前がなかった事実上獣のような扱いを受けていた奴婢、天民出身者に名前と戸籍を作ってあげたのが日本政府ですが、当時日本に行って近代市民になってお金を稼ぎ成功した奴婢家出身の朝鮮人たちがとても増加し、平民の間でもお前も僕も日本語を学び社会のあらゆる生活様式に日本ドリームが流行のように広がったそうです。
これを見て朝鮮王室と両班支配層は創氏改名という事実に歪曲させ、これが現在まで歴史書に出ています。 それでも朝鮮王室と両班は儒教的身分制を維持し既得権を守るために奴婢と下層民に文を教えずに本や新聞を読む姿が見えたら、目を刺して失明させ盲人にしたり舌を切って話せないようにしたそうです。
古代封建国家の枠を脱することができず、人権蹂躙を行ったのは朝鮮王室と両班たちでした。
当時民衆が流行のように日本名を持って日本語を学んだのは、今現代の韓国人が英語を学び、ネイティブ英語の授業時間に英語名ニックネームを持つのと同じ理屈です。
亡くなった母方の祖父の父、祖父などが直接経験したことで文を読み書きができなくて日本政府支援で日本語を学び文盲から脱皮した母方の曾祖母の悲しい人生史を聞いて胸が痛かったです。
そして当時、朝鮮民衆が朝鮮王室、両班の搾取と人権蹂躙にどれほど大きな敵意と怒り心を持っていたのか、また民衆を苦しめ苦しめ搾取した無能で腐敗した朝鮮王室と両班儒生など朝鮮支配層に対する憎悪と苦痛が感じられました···
母方の祖父は日本統治時代を直接経験した方なので、当時民衆の心理と社会雰囲気をよりよく知っていましたし、母方の祖父の父である外曾祖、外高祖祖父、祖母たちは朝鮮時代末期から暮らしていた方々なので真実を語ってくれたはず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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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下は原文。
(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1922년생이신데 어릴적에 들은 일제시대 얘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당시 일본에서 조선 청년들을 징용과 노동에 강제로 동원한 것이 아니라 살인, 강간, 성폭행, 강도, 상해 등 흉악범 및 살인범 같은 사형수들만 골라서 데려간게 실제 사실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사형수들의 인권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 시절과 현대의 인권의식을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영화 실미도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이건 일본뿐만 아니라 18~19세기 서양 유럽에서도 살인범, 흉악범 같은 사형수들을 꾀어 사형집행을 면하는 조건으로 병력확보 목적으로 전쟁터에 징용한건 전 세계적인 역사입니다.
일본에서 의료봉사를 왔던 일본인 의사들의 영향으로 현대식 의료기술이 도입되어 조선인들의 병이 많이 치료가 되었으며, 평균수명이 늘고 삶의질이 높아진것도 이 때부터라고 합니다.
조선인 생체실험에 대한 것도 실제로는 사형수들만 골라서 데려갔으며 일부 조선인 지주와 양반들은 자신들의 노비와 하인들을 살해한 뒤에 돈을 받고 일본인 장의사들에게 의료실습용 시신을 팔아넘겨 기증했다고 합니다.
길거리에 배설물을 치우며 도로공사, 배수로 작업, 상하수도 보급으로 각 가정에 수도와 화장실을 보급하고 지역별로 위생국을 세워 빈민구휼과 치약, 칫솔, 비누 등을 무상 제공해주고 조선인들의 위생을 개선시킨 것도 의료봉사 왔던 일본인 의사들과 사회복지사 및 독지가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실제 현실입니다.
그리고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도 1945년 이전까지 민중 내에서는 유교적 신분제도가 여전히 남아있었고, 글을 모르던 노비들과 천민 후손들은 양반들의 꾀에 넘어가 겉으로는 머슴이라는 정식 고용된 노동자로 기록하고 실제로는 조선 노비들과 다를게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지방과 시골은 더욱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걸 타파하고 신분제 완전폐지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조선 양반들과 왕실 지배층을 통제한게 일본입니다.
그리고 글을 모르던 노비와 천민출신에게 글을 가르친게 일본 정부입니다. 물론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가르치긴 했지만, 사회 하위 계층들에게 고의로 글을 가르치지 않고 노비로 부려먹었던 부패한 조선왕실과 양반 등 조선사회 지배층들 보다는 설령 일본어와 히라가나를 가르쳐서 문맹철폐를 위해 노력한 일본정부가 덜 나쁘거나 또는 차라리 더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성리학적 신분질서 굳힐 목적으로 민중들이 글을 읽고 쓰는걸 막기 위해 조선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모든 문서와 신문, 서적 등에 한문을 사용하면서 세종대왕이 만든 민족 고유언어인 한글을 없애기 위해 발악하던게 조선왕실과 양반들이었습니다.
창씨개명은 그 진실과 내면을 들여다보면 왜곡입니다. 또한 호적과 이름이 없었던 사실상 짐승과도 같은 취급을 받던 노비, 천민 출신들에게 이름과 호적을 만들어준게 일본 정부인데, 당시 일본으로 가서 근대 시민이 되어 돈을 벌고 성공한 노비집안 출신 조선인들이 굉장히 증가하면서 평민들 사이에서도 너도 나도 일본어를 배우며 사회 모든 생활양식에 일본 드림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합니다.
이걸 보고 조선왕실과 양반 지배층들은 창씨개명이란 사실로 왜곡시켜서 이것이 현재까지 역사책에 나와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왕실과 양반들은 유교적 신분제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노비와 하층민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고 책이나 신문을 읽는 모습이 보이면 눈을 찔러 실명시켜 맹인을 만들거나 혀를 잘라 말을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고대 봉건국가 틀을 못 벗어나고 인권유린을 자행한건 조선왕실과 양반들이었습니다.
당시 민중들이 유행처럼 일본이름을 갖고 일본어를 배운건 지금 현대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우고 원어민 영어수업 시간에 영어이름 닉네임 갖는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 등이 직접 겪으신 일들이며 글을 읽고 쓸줄 몰라서 일본정부 지원으로 일본어를 배우고 문맹에서 탈피했던 외증조 할아버지의 슬픈 인생사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 민중들이 조선왕실, 양반들의 착취와 인권유린에 얼마나 큰 적개심과 분노심을 갖고 있었는지 또한 백성들을 못살게 부려먹고 괴롭히며 착취한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왕실과 양반유생 등 조선 지배층들을 향한 증오와 고통이 느껴지더군요...
외할아버지께서는 일제시대를 직접 겪고 살아보신 분이라 당시 민중들의 심리와 사회분위기를 더 잘 알고계셨고 외할아버지의 아버지인 외증조, 외고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조선시대 말기부터 살았던 분들이기에 진실을 말해주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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